“국군 최초의 6·25전쟁 승리 전투, 춘천대첩

시민이 함께한 춘천대첩은 춘천에서 6일을 버텨줘서 인천상륙작전도 가능했고 낙동강전선도 준비할 수 있었다

민재정 기자 | 기사입력 2015/05/14 [17:54]

“국군 최초의 6·25전쟁 승리 전투, 춘천대첩

시민이 함께한 춘천대첩은 춘천에서 6일을 버텨줘서 인천상륙작전도 가능했고 낙동강전선도 준비할 수 있었다

민재정 기자 | 입력 : 2015/05/14 [17:54]

<특별기고>  
   “국군 최초의 6·25전쟁 승리 전투, 춘천대첩

 - 시민이 함께한 춘천대첩은 춘천에서 6일을 버텨줘서 인천상륙작전도 가능했고,
   낙동강전선도 준비할 수 있었다
- 춘천시민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6·25 춘천전투 중대장을 했던 이대용 장군(92세)의 증언,

“이제는 남기고 떠나야 할 말들을 주저없이 하겠다”는 이대용 장군,
 춘천대첩의 진실과 오해,그리고 역사! 이대용장군에게 듣는다.

                        

      

                     이대용
               - 예비역 육군준장
               - 6.25전쟁 춘천전투 당시 
               - 제6사단 제7연대 제1중대장
               - 현재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명예회장

 
 
 
 
6·25공원건립국민운동본부는 지난 4월 27일(月)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춘천이 있어 대한민국이 있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6·25 전쟁이 나기 직전, 탈북(월남)해 내려온 인민군들이 ‘북괴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증언했지만, 미군정보에만 의지할 뿐 대한민국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6월 25일 새벽, 북한이 남침해 오자, 국군은 전쟁다운 전쟁 한 번 제대로 해 보지도 못 하고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내 줘야 했다. 파죽지세로 밀어닥치는 인민군한테 밀려난 것.
그러나 춘천은 달랐다.
  북한군 1개 군단에 맞서 춘천과 홍천 전투를 지휘했던 김종오 대령은 무려 85KM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에서 무려 엿새를 버텨줬다. 우습게 여겼던 동부전선이 춘천에서 닷새를 머물며 인민군의 피해가 커지자, 수원과 이천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간 인민군도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사흘을 그 자리에서 머물며 기다려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역사의 진실은 4월 27일(月)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사) 6·25공원건립 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세미나 “춘천이 잇어 대한민국이 있다”라는 세미나에서 이대용 장군(92세, 주월공사로 월남전 포로,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명예회장)에 의해 소상히 밝혀진다.
당시 춘천전투에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이대용 예비역 장군은 6·25 전쟁 당시  우리 국군이 춘천전투에서 첫 승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춘천시민 덕분이었다고, 단 한 마디로 단언한다.

“전쟁을 군인만 하면 반쪽짜리 승리밖에 못 한다. 온갖 열악한 상황에서도 춘천에서 우리가 엿새를 버티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춘천시민이 우리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춘천교대의 체육 교수가 나서서 춘천교대와 춘천고등학교, 춘천여고 학생들은 물론 부인회와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가 포탄을 날라주고, 진지를 구축해 주고, 밥을 해다 나르는 헌신적인 자발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춘천대첩이라고 부른다. 이런 시민들의 놀라운 지원덕분에 국군의 사기가 충만했으며, 멸망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출할 수 있었다. 춘천대첩은 춘천의 민?관?군의 합작품인데, 후세가 그걸 모른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대용 장군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전쟁 발발 직전과 개천 초기 춘천시민들의 활약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춘천시민들의 자발적 방어진지 구축 협력
  1950년 봄 전쟁 발발 직전 군에서는 방어진지 및 후방지역 예비 방어진지 구축계획을 수립하고 진지공사를 시작하려고 하자, 춘천의 중?고등학교 남녀학생, 농과대학생, 청년단원, 춘천시 공무원과 시민들이 삽?곡괭이들을 가지고 대규모 진지공사에 자진해서 노력 동원하여 방어진지 구축에 군인들과 함께 땀 흘려 견고한 군 방어진지 구축 공사를 마무리함으로써, 이 견고한 군 방어진지가 6.25전쟁 초기 전투에 춘천방어를 위해 결정적으로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군 전투능력 증강에 불멸의 군수(軍需) 노력지원
  또한 6.25전쟁이 발발하자 시민들이 길가에 나와서 출동하는 군인들에게 ??국군 만세????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격려를 보내고, 시민?학생 등 천여 명이 군부대로 달려와서 소양강 북쪽의 우도동에 저장되어 있던 포탄 약 4,000발을 소양강 남쪽으로 운반하기 위해 손수레?자전거를 갖고 와서 또는 맨손 등으로 운반하였고, 대한부인회원들은 연대본부로 달려와서 취사 등을 도왔으며, 청년단원들은 소총탄, 기관총탄, 박격포탄 등을 일선 중대로 운반 보급하였다. 이와 같이 땀을 흘렸던 춘천시민들이 있었기에 유엔군의 지원을 이끌어 내어 궁극적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이분법적으로 분열하는 사회현상을 안타까워하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춘천대첩에서와 같은 민`관`군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 당시 춘천전투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던 30여 명도 노구를 이끌고 27일 세미나에 참석해 65년 전의 일을 자랑스럽게 회상했다. 이들은 잊혀져가는 6.25전쟁의 교훈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로 알려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 공원을 건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과 한상대 전 검찰총장, 그리고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인 박선영교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춘천대첩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당시 춘천시민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전파하기 위해 오늘의 이 세미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6·25 공원건립 국민운동본부는 6·25 공원을 6·25 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던 펀치볼(강원도 양구군 소재)에 건립하기로 하고, 오는 6월 20일 펀치볼에서 1단계 사업으로 펀치볼625둘레길(Korean War Trail) 표지석 기공식을 갖는다.
 
펀치볼 둘레길 조감도.
▲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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